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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따개의 음모론적 뷰/시황 및 정보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개념 정의와 타임라인 (1929~1933년)

by 주식하는 캔따개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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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기 보다는 과거의 일들을 살펴보면 타산지석을 삼을 수 있으니까 이참에 한번 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죠. 


대공황 당시의 일들은 한국은 일제 강점기 시대기도 했고, 세계사 교과서에서 간단하게만 서술되고 넘어가고, 정확히 무슨 일 때문인지는 서술이 상세하게는 안되어있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세히 모르지요.

 

저도 이번에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사실 이게 남의 나라 근대사라 ㅋㅋ 대공황이 뭔지, 이참에 개념 정의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지면 마련해봤습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개념 정의

대공황은 1929년 미국의 주식 시장 붕괴를 계기로 시작되어 1930년대 전 세계로 확산된 심각한 경제 위기를 뜻해요.
 
단순한 경기 침체(recession)를 넘어, 경제 활동 전반이 장기간에 걸쳐 극도로 위축된 상태를 가리키죠.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이 깊었던 경제 위기로 평가받아요.
 
 
 
 
대공황의 주요 특징
 
1. 경제적 붕괴:
  • 실업률 급등 (미국 기준 25% 이상), 생산 감소, 소비와 투자 급락.
  • 은행 파산과 금융 시스템 마비로 신용 경색 발생.
 
2. 글로벌 확산 
  •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 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파급.
  • 국제 무역과 금융 네트워크 붕괴로 각국 경제가 연쇄적으로 타격.
 
3. 장기성:
  • 1929년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약 10년간 지속. (국가마다 회복 시기는 다름)
 
4. 사회적 영향:
  • 대규모 빈곤, 빈민촌 형성, 사회 불안 증가.
  • 정치적으로는 뉴딜 정책(미국)이나 파시즘의 부상(유럽) 같은 극단적 대응이 나타남
 
 

원인 (간단 3줄 요약)

  • 주식 시장 거품 붕괴: 1920년대 과도한 투기와 신용 대출이 붕괴로 이어짐.
  • 구조적 문제: 소득 불균형, 농업 침체, 과잉 생산.
  • 정책 실패: 스무트-홀리 관세법 같은 보호무역주의와 초기 소극적 정부 대응.
 
 

한국과의 연관성

 
먼저 일제강점기를 언급했듯이, 당시 한국은 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에 대공황의 직접적 영향보다는 일본 경제의 타격을 간접적으로 받았어요.
 
일본이 수출 감소와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조선 내 쌀 수탈이나 노동 착취가 더 심해졌죠. 하지만 한국 교과서에선 이런 디테일이 잘 안 다뤄져서 아쉬운 부분이 있네요.
 
 
 

대공황(Great Depression)
대공황(Great Depression)
 
 

 

대공황 타임라인 (1929~1933년 초반 중심)

 
 
1920년대 후반: 과열의 전조
  • 1920년대 "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림. 주식 시장이 급등하고, 소비가 늘어나며, 부동산과 산업이 붐을 이룸. 하지만 이 호황은 신용 대출과 투기로 부풀려진 거품이었음.
  • 농업 문제: 1차 세계대전 후 농산물 수요가 줄면서 농민들은 이미 1920년대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 도시의 번영과 달리 농촌은 침체 상태.
 
1929년 10월: 주식 시장 붕괴
  •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뉴욕 증시에서 주식 매도 물량이 폭증하며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
  •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대규모 패닉 셀이 터지며 주식 시장이 완전히 붕괴. 다우존스 지수가 하루 만에 12% 하락. 이게 대공황의 공식적인 시작점으로 여겨짐.
  • 결과: 투자자들 파산, 은행에 돈을 빌린 사람들이 빚을 갚지 못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
 
1930년: 위기 확산과 관세법
  • 은행 도산: 주식 붕괴 후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빼내려 하면서 1930년에만 1,300개 이상의 은행이 파산. 신뢰 붕괴로 경제가 더 얼어붙음.
  • 스무트-홀리 관세법 (1930년 6월): 미국 의회가 보호무역주의를 밀어붙이며 2만 개 이상의 수입품에 평균 40~50% 관세를 부과. 원래 의도는 미국 산업 보호였지만, 역효과 발생.
  • 국제 반발: 캐나다, 유럽 등 주요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 관세로 대응. 예를 들어, 캐나다는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올리고 유럽은 수입을 줄임.
  • 무역 붕괴: 1929년 36억 달러였던 미국 수출이 1932년 12억 달러로 급감. 글로벌 무역이 60% 이상 줄어드는 참사.
 
1931년: 전 세계로 퍼진 위기
  • 유럽 연쇄 붕괴: 미국발 경제 위기가 유럽으로 전이. 오스트리아의 크레디트-안슈탈트 은행 파산(1931년 5월)이 도화선이 되어 독일, 영국 등도 금융 위기에 빠짐.
  • 금본위제 붕괴: 영국이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국제 통화 시스템이 혼란에 빠짐.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며 "경쟁적 평가절하" 시작.
 
1932년: 대공황의 정점
  • 실업률 폭등: 미국 실업률이 25%에 달함. 약 1,30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공장 가동률은 50% 아래로 떨어짐.
  • 후버의 정책 실패: 후버 대통령은 초기엔 "시장 스스로 회복할 것"이라며 소극적 대응. 1932년에야 공공사업을 늘리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음.
  • 사회적 혼란: "후버빌(Hoovervilles)"이라 불리는 빈민촌이 전국에 생기고, 농민들은 생산물을 버리며 항의.
 
1933년: 회복의 시작
  • FDR 취임 (1933년 3월):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뉴딜 정책 시작. 은행 휴업 선언 후 금융 시스템 재정비, 공공사업 확대 등으로 경제 회복 시도.
  • 관세 완화 움직임: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s Act)으로 관세를 낮추며 무역 회복을 꾀함. 스무트-홀리법의 폐해를 인정한 셈.

 


 
 
 

관세와 대공황의 연결고리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대공황을 "일으켰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위기를 더 악화시킨 건 분명해요.
 
당시 경제학자 1,000명 이상이 법안 반대 서명을 했을 정도로 위험성이 지적됐는데도 의회는 밀어붙였어요.
 
이는 결과적으로:
  • 무역 감소: 글로벌 무역이 1929년 360억 달러에서 1932년 120억 달러로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
  • 보복의 악순환: 각국이 관세 장벽을 높이며 경제 블록화가 가속화됐고, 회복이 더뎌짐.

 

 

금융 시스템과 자산 시장의 긴밀한 관계

금융 시스템은 경제의 혈관 같은 거예요. 돈이 잘 돌면 경제가 건강하고, 막히면 위기가 오죠. 은행, 주식 시장, 부동산은 서로 의존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아요:
 
  • 은행: 돈을 빌려주고 예금을 관리하며 신용을 공급.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을 대출해주는 핵심 역할.
  • 주식 시장: 기업 자금 조달과 투자자 수익의 장. 주가가 오르면 은행 대출도 늘고, 부동산 같은 자산 가치도 올라가요.
  • 부동산: 대출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되는 대표 자산.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은행 자산 가치도 올라가고, 주식 시장에도 긍정적 신호가 가죠.
이 셋이 서로 물고 물리며 돌아가다 보니, 한쪽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전체가 흔들려요. 대공황 때도 이런 연결고리가 위기를 키웠어요.

 

 


 

 

관세 → 주가 → 대공황의 연결 흐름

 

1. 관세 (스무트-홀리 관세법):

  • 1930년 미국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
  • 글로벌 무역이 줄어들었어요. 수출 기업들은 매출이 급감하고, 수입 비용은 올라가며 기업 이익이 타격을 받았죠.

 

2. 주가하락

  • 무역 감소로 기업 실적이 악화되니 주식 시장에 반영됐어요. 이미 1929년 주식 붕괴로 투자자 신뢰가 바닥이었던 상황에서 관세는 추가 타격을 줬죠.
  • 주가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돈을 잃고, 은행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해요. 은행은 대출 회수가 안 되니 파산 위기에 몰렸고요.


3. 대공황 심화:

  • 은행이 망하면서 신용 공급이 끊겼어요. 기업은 자금을 못 구하고, 개인은 소비를 줄였죠.
  •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었어요. 대출이 막히니 집을 사거나 지을 돈이 없어졌고, 부동산 가치가 폭락하면서 은행 자산도 더 망가졌어요.

 


이 모든 상황이 합쳐져 실업률이 치솟고 경제가 장기 침체로 들어간 거예요. 그리고 결국 한군데서 팡 터진게 주가 폭락으로 시작한 대공황이죠. 

 


 

 

FED의 1920년대 말 정책과 버블 인식

 
1920년대 후반, 미국 경제는 "광란의 20년대"라 불릴 정도로 과열됐어요. 주식 시장은 투기 열풍으로 거품이 끼었고, 신용 대출이 급증했죠. FED는 이 상황을 보고 "경제가 너무 뜨겁다, 버블을 터뜨려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 이자율 인상: 1928년부터 FED는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1928년 초 3.5%였던 금리가 1929년엔 6%까지 치솟았죠. 돈 빌리는 비용이 비싸지니 기업과 개인의 투자와 소비가 줄었어요.
  • 통화량 축소: FED는 통화 공급을 줄여서 시장의 유동성을 조였어요. 은행들이 대출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들면서 신용 경색이 심해졌죠.
FED의 의도는 과열을 식히고 연착륙을 유도하는 거였지만, 타이밍과 강도가 문제였어요. 1929년 10월 주식 시장 붕괴 직전에 이미 경제가 흔들리던 상황에서 금리 인상과 통화 축소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어요.

 

 

 

은행 연쇄 도산과 통화 정책의 연관성

FED(연방준비제도)의 정책 결정이 대공황을 더 깊게 만든 요인 중 하나라는 점, 그리고 통화량을 줄인 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분석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꽤 공감받는 관점이죠.
 
은행의 연쇄 도산은 FED의 당시 상황을 오판한 정책과 떼놓을 수 없어요.
 
  • 신용 경색: 금리가 오르고 통화량이 줄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하거나 새 대출을 꺼렸어요. 주식 시장 붕괴로 투자자들이 돈을 잃자, 은행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터졌죠.
  • 예금 인출 사태 (Bank Run): 1930년부터 사람들이 은행에 몰려 예금을 빼가기 시작했어요. FED가 유동성을 충분히 풀지 않으니 은행들은 현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고, 1930~1933년 사이에 약 9,000개 은행이 파산했어요.
  • 돈의 유통 속도 감소: 통화량이 줄어들고 은행이 망하면서 돈이 시장에서 돌지 않았어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걸 "통화 수축(Monetary Contraction)"이라며 대공황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봤죠.

 

 

통화량을 늘리는 게 맞았을까?

대공황 같은 극단적 경기침체에선 통화량을 늘리는 게 더 나은 대응이었다는 주장이 현대 경제학에서 꽤 설득력을 얻고 있어요.
 
  • 케인스주의 관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돈을 풀고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했어요. 당시 FED가 통화량을 늘려 은행을 살렸다면 연쇄 도산을 막고 경제 붕괴 속도를 늦췄을 가능성이 있죠.
  • 프리드먼의 비판: 밀턴 프리드먼도 FED가 통화량을 줄인 걸 대공황의 주범으로 봤어요. 그는 "FED가 돈을 더 풀어서 유동성을 살렸어야 했다"고 주장했죠.
  • 현대 사례: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은 금리를 낮추고 양적 완화(QE)로 통화량을 대규모로 늘렸어요. 그 결과 대공황 같은 장기 침체는 피했죠.
당시 FED는 "금본위제" 때문에 통화량을 마음껏 늘리기 어려웠다는 변명도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정책 실패"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에요.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다면 은행 도산을 줄이고 소비와 투자를 살릴 기회가 있었을 거예요.

 

 


 

 

캔따개의 결론

"대공황=경기침체를 같이 가져오니까 통화량을 늘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당시 FED는 버블을 터뜨리려다 경제 전체를 무너뜨렸고, 통화량 축소가 은행 도산과 경기 침체를 가속화했죠. 

 

반대로 통화량을 늘렸다면 충격을 완화할 여지가 있었을 거예요. 이건 현대 경제 정책에서도 큰 교훈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고요.

 

어떤가요? 관세와 주가와 대공황은 서로 복잡하게 연결이 되어있어요.

 

금융 시스템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건, 관세 같은 외부 충격이 주식 시장을 흔들고, 그게 다시 은행과 부동산으로 퍼지며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이에요. 

 

금융 시스템이라는 건 어느 하나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은행, 주식시장, 부동산 등 자산 시장과 함께 긴밀하게 돌아가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대공황 때 관세는 방아쇠 역할을 했고, 이미 취약해졌던 금융 시스템이 연쇄 붕괴를 일으켰죠.